날아라 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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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과장의 취미활동/예술

검은 피카소, 천재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크리스임 2021. 5. 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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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과장입니다.

 

오늘은 거리의 예술가이자 반항아, 검은 피카소,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에 대하여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바스키아(1966)> 영화도 소장하고 있고,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을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유명한 패션 브랜드에서도 협업하여 많이 알려지기도 했죠. 바스키아는 이 왕관 모양의 그림이 흑인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시그니처 그림으로써 '서명' 대신 사용할 정도로 자주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왼쪽 하단에 바스키아의 시그니처인 왕관 모양이 있다. 바스키아의 작품 <할리우드 아프리칸스(1883)>. 바비칸 아트 갤러리 제공· ⓒ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아래 사진에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l Basquiat)'입니다.

 

바스키아는 정식 미술교육도 받지 않고 어린 나이부터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아 검은 피카소라 불렸고,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그는 1960년 12월 22일에 태어난 미국 화가이며 음악가,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만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사랑하지 않는 순간에도 당신을 사랑해” –영화, 바스키아

“I feel you even when I’m not feeling you. I love you even when I am not loving you” –Movie, Basquiat


 

바스키아는 1970년대 들어서부터 그라피티 그룹인 SAMO (Same Old shit)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고,  그는 부와 가난, 통합과 분리, 내면과 외면과 같은 ‘암시적인 이분법’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에 초점을 두어 활동을 하며

약 8여 년간 동안 3천여 점이나 되는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어마어마한 활동을 이어가게 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스키아는 익명의 SAMO가 아닌 바스키아로써 유명해지기를 원했고, 친구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결국 "세이모는 죽었다(SAMO Is Dead)"라는 마지막 메시지와 함께 그룹을 공식적으로 해체하고, 바스키아 본인의 이름으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휘트니 뮤지엄 소장, 장 미셸 바스키아 <할리우드 아프리칸스(1983)>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

 

바스키아는 SAMO 그룹 해체 이후, 1980년대 들어서 바스키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현대 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hole)'입니다.

 

앤디 워홀은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바로 알아보고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도록 하고 바스키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앤디 워홀의 지원 덕분으로 바스키아는 비로소 ‘신표현주의’와 ‘원초 주의’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그토록 원하던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바스키아의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 유명세로 인하여 앤디 워홀과 루머와 휩싸이고 괴로워하다 앤디 워홀과도 멀어지게 되며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러다 절친이자 정신적 지주인 앤디 워홀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게 되는데, 이후 마약을 하며 방황을 하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코카인 남용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해 나이 27세,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여 비운의 인생을 살았지만 바스키아는 현재까지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작가로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리뷰를 마치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리뷰를 하면서 영화도 다시 보고 작품들도 찾아보고 했는데요. 

 

아래 있는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휘트니 뮤지엄에서 소장하고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 <할리우드 아프리칸스(1983)>입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당시 휘트니 뮤지엄에서 실제로 보고 있자니 참 감회가 새롭고, 뭔지 모를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여러분들도 바스키아의 영화나 스토리를 보시고 작품을 한번 감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휘트니 뮤지엄 소장, 장 미셸 바스키아 <할리우드 아프리칸스(1983)>

 

혹시 바스키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휘트니 뮤지엄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을 아래 링크를 통해 휘트니 뮤지엄에 대하여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New York 뉴욕] 휘트니 뮤지엄 오브 아트 "리뷰"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뉴욕 소더비 경매 약 1248억원 낙찰된 바스키아의 <Untitled (1982)> 사진 출저_  thebxmagazine.com

 

# Jean-Michel Basquiat, who was recognized as a talented person for art in his early age, was called by Black Picasso. He wanted to be an artist after he saw his mother was moved to tears in front of Picasso’s art “Guernica”. He was an artist (born on December 22nd, 1960) as well as known for musician and producer.

 

In the 1970s, he started to make a reputation as an artist through his informal graffiti group SAMO. His art characteristics focused on “suggestive dichotomies”- such as wealth versus poverty, integration versus segregation, and inner versus outer experience- and also had social criticism. At the turn of the 1980s, his art was finally spotlighted by the world in the point of ‘Neo-expressionism’ and ‘Primitivist paintings’ views.

 

However, he started to feel adrift after his best friend and spiritual prop, Andy Warhol, died. Then, he finally ended up his life when he was 27 years old because of cocaine abuse.

 

Jean-Michel Basquiat. Even though he lived like fireworks, which is splendid but short running time, the lingering imagery from his art is still in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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